스냅: 상대의 미래를 간파하는 힘, 매튜 헤르텐슈타인,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책 뒤의 50여 페이지(대략 전체의 1/6)에 이르는 참고문헌과 주석은 어쩐지 학술서적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지만, 책 전체를 글자 몇개로 요약할 수 있다: “척 보면 안다. 아님 말고.” 얼핏 보기에는 통계적 “증거”를 이용하는 사뭇 과학적인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잘 읽어보면 과학과 비슷(似)하지만(而) 아닌(非), 글자 그대로 사이비 과학이다. 일상 생활에서 보통 사람들이 “척 보면 안다”는 것이 신비한 일인 것은 맞다. 그런데 이 책이 그것에 대한 이유를 탐구하는 방식은 점성술 같은 방식이다. 이 책이 점성술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는 인간의 직관적 인식의 인과관계가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
불평등 경제, 토마 피케티,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현란한 책이다. 임금소득의 불평등과 임금소득과 자본소득 사이의 불평등에 대한 몇가지 관측자료를 놓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공공경제학, 경제성장론, 노동경제학, 금융경제학 등등의 이론 꼭지들을 가져와서 붙여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책의 광고에 나오는 식의 강한 “처방”은 없고, 이전 연구들을 개관하면서 자기 주장을 슬쩍 섞어 넣는 식으로 구성하였다. 그런 현란한 구성만으로 미루어보자면, 대충 학부 3학년 정도의 전공과목에서 서너번 강의한 내용을 모아서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개관하는 정도의 내용이라서 그런지, 강한 논리적 연결이 필요한 부분을 슬쩍 비비고 지나가는 것도 있고, 독자가 (아니, 수..
보이지 않는 수호자 (El guardián invisible), 돌로레스 레돈도,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때 표지의 감촉이 나의 첫 Thinkpad를 기억나게 했다. 우레탄 코팅이 되어있는 상판의 독특한 느낌에 매료되었던 그 기억에 더 따지지도 않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늘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항상 후회로 이어진다. 뒷 표지에 광고문구 겸으로 박아 놓은 글귀는 좀 있어 보인다. “청소년의 미래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실패한 사회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본 이 광고문구는 정치 상업주의의 전형이다. 마치 책 내용이 올해 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슬쩍 찔러놓지만, 그런 내용은 주인공의 한차례 독백으로만 나올 뿐..
다독(多讀)을 자랑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7-8년전에 블로그가 싸이월드를 대신할 SNS가 될 듯이 인기몰이를 할때에도 일년에 100권을 봤다고 자랑하는 사람의 블로그 포스팅을 본 적도 있다. 그 사람이 주르륵 적어 놓은 책 제목들을 보고서는 실소를 터뜨렸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에는 책방에서 서성대다가 장정일이 쓴 다독 자랑 책을 구경하면서 이제 장정일은 창작력은 소진되어 메타북이나 만들면서 돈을 버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도 난다. 방금 전에 아쉬운 일요일 밤의 웹 서핑을 즐기다 책 광고 낚시에 걸려들었다. 나를 낚은 문구는 “3년 동안 1만 부의 책을 읽고 2년 동안 50종의 책을 쓴 사람이 있다”라는 문구였다. 몇년전 어떤 정치인이 자기 장서가 1만권이 넘어서 집이 커야 한다고 억지 부리던 모습..
The Balkans: A Short History, Mark Mazower, 2000 (목숨 걸고 피해야 하는) 우리말 번역본: 발칸의 역사, 2014년 신판 (초판 2006) 서양근대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홈스봄의 저작들을 축으로 형성되었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발칸반도의 역사에 대한 막연한 관심도 비슷한 이유로 생겼다. “제국의 시대”에서 언급된 부분부터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거쳐 “극단의 시대”에도 지엽적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저작들은 큰 그림을 보는데에는 훌륭한 책들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엉뚱한 이유이긴 하지만, 영어로 쓰여진 세계사책에서 우리나라가 지엽적으로 다루어지는 것과 같은 괜한 억울함이 겹쳐 있다는 것은..
원서를 교재로 쓰는 과목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다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국제학생판으로 나오는 책은 인도나 싱가포르에서 찍어서 그저 그런 종이 질에 얇은 표지로 상하기 쉽게 만든 대신 값이 싸다. 그런 책은 뒷표지에 큼직하게 “미국내 판매 금지”라거나 “한국 이외 국가에서 판매금지”라고 박혀 있다.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의 상당부분(아마도 대부분)을 공급하는 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공지를 내걸었다. 외국 출판사 도서가 국내에서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사례가 발생되어 외국 출판사에서 이를 방지 하기 위해 자국에서 판매하는 도서와 아시아와 유럽에서 판매하는 도서에 차별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Pearson New Internatioanl Edition도 그런 취지에서 발간된 도서입니다. 에디션은 동일하나 책 마다..
고등학교때 수학적 귀납법을 기계적인 증명 기술로 배우고 나서 흔히 하는 실수가 바로 무한대에 해당하는 것이 보이면 뭐든지 귀납법으로 증명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수학공부를 하면서 이런 오해가 계속되면 선택공리를 증명하면 되지 왜 공리로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 (나도 한때는 가산선택공리는 귀납법으로 증명 가능한거 아니냐고 착각했었으니깐,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나만 모르는게 아니었어”하고 동지 의식을 가져도 된다.) 그런 착각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귀납법은 임의의 유한한 n에 대해 명제가 성립함을 보이는 것”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연수 집합은 그 크기가 무한한데 왜 유한한 숫자에만 해당한다는 ..
고백 (告白), 미나토 가나에, 2009년 우리말 번역본 추리소설로 소개받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이 아니다. 도대체 소개한 사람은 왜 이걸 추리소설이라고 얘기했을까? 사망/살인 사건이 있어서? 단서를 짜맞추고 작가와 독자가 게임을 하는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사건개요와 범인은 첫 장에 이미 다 나온다. 심지어 그 내용은 책 광고에 다 나와있다. 구성 자체는 딱히 새롭지 않다.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을 처음 보는게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첫 장에서 이미 독자는 상자에 담긴 물건을 꺼내어 본 것처럼 대략적인 사건의 윤곽은 알게된다. 그 다음 장부터는 꺼내어 놓은 물건을 이쪽에서 보고 저쪽으로 돌려보고 바닥을 뒤집어 보고 하는 식으로 사건을 더 자세히 살..
데이터는 답을 알고 있다: 빅데이터 마케팅, 문석현, 2014 어렵게 찾아낸 이 책의 좋은 점: 책 내용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빅데이터”라는 의미없는 유행어는 사라지고 “데이터”라는 정상적인 용어가 사용된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책에 대해서 할 수 있는 좋은 말이 없다. 저자가 뭔가를 알고는 있는 것 같지만, 영업상의 비밀 때문인지 책의 내용에는 서문에서 말하는 “인사이트insight를 얻어 가시는 계기”를 제공하지 않는다. 데이타를 써서 현명하게 의사결정하는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그 인사이트라면, 나는 여기서 입을 다무는 것이 훨씬 낫겠다. 그게 인사이트라면 나는 애초에 이 책이 대상으로 상정하는 독자가 아니었으니까, 이 책을 집어든 내가 잘못한거다. 좋은 점 하나 더: 책의 밑에 너댓줄은 들어갈 공간..
스틸 라이프 (Still Life), 루이즈 페니, 2014년 우리말 번역본 개정판 (초판 2011) 다른 긴 책을 읽는 중에 쉴 겸 해서 신간쪽을 서성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딱히 좋은 이유가 있어서 뽑아 든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똑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던 것 때문에 뽑았다. 표지를 슬쩍 뒤집어 보니 추리소설이라고 소개겸 광고가 되어 있네. 그래, 오랜만에 추리소설 하나 읽어보자. 소개겸 광고에 계속 소환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름의 권위는 새로운 시도를 정당화 했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것 같다. 내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군데 아귀가 안맞는게 보인다. 개정판까지 나온 번역이니까 오역으로 인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구멍은 오래전에 해리 포터 3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