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無腦

책 사지 말라는 광고

nikolai 2014. 11. 14. 20:00

원서를 교재로 쓰는 과목을 들어본 경험이 있다면 다 알지만, 우리나라에서 국제학생판으로 나오는 책은 인도나 싱가포르에서 찍어서 그저 그런 종이 질에 얇은 표지로 상하기 쉽게 만든 대신 값이 싸다. 그런 책은 뒷표지에 큼직하게 “미국내 판매 금지”라거나 “한국 이외 국가에서 판매금지”라고 박혀 있다.

우리나라 수학 교과서의 상당부분(아마도 대부분)을 공급하는 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공지를 내걸었다.

외국 출판사 도서가 국내에서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사례가 발생되어 외국 출판사에서 이를 방지 하기 위해 자국에서 판매하는 도서와 아시아와 유럽에서 판매하는 도서에 차별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Pearson New Internatioanl Edition도 그런 취지에서 발간된 도서입니다. 에디션은 동일하나 책 마다 변경된 부분이 있습니다. 구매하셔서 공부하시는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런 공지를 걸어 놓은 회사가 그런 의사결정을 한게 아니니까 욕할건 없다. 그렇지만 교과서 재벌인 피어슨같은 출판사는 욕을 먹어야 할 것이다.

그 교과서 재벌이 벌인 만행은 책에서 장 하나를 그냥 빼버린 것이다. 그것도 굉장히 많이 쓰이는 교과서에 그런 짓을 해 놓았다. Friedberg 선형대수 교과서, Fraleigh 대수 교과서, Munkres 위상 교과서, 그리고 Hogg의 수리통계 교과서가 만행의 대상이 되었다.

어떤 저열한 장사꾼의 악행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하는 짓이 교과서의 내용을 난도질 하는 것이라니, 재벌의 사고방식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자기와의 계약을 파기한 자를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책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을 엿먹이는 방식이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리다니. 저자들이 저런 만행에 동의를 했을까? 저자들이 그런 짓에 동의했을거 같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저자를 무시하고 만행을 저질러도 될 만큼 피어슨이 저자들을 노예 대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렇지만, 현실에는 이미 벌어져 있는 일이다.

저 책들은 앞으로 사는 사람이 없어지고, 교재니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도 비합법적인 경로로 복사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질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만연한 불법 PDF 다운로드는 더 늘어날 것임이 분명하다.

어차피 국제학생판을 내는 피어슨의 입장에서는 그거 판매량이 0이 되더라도 손해볼 것도 없으니까 달라질 것도 없겠지만, 나의 태도는 확실히 달라졌다. 적어도 저 책들에 관해서는 한국내 불법복사가 늘어난다고 해서 불법복사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겠다.

댓글
공지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