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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腦

고백

nikolai 2014. 7. 14. 22:00
고백 (告白), 미나토 가나에, 2009년 우리말 번역본

추리소설로 소개받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이 아니다. 도대체 소개한 사람은 왜 이걸 추리소설이라고 얘기했을까? 사망/살인 사건이 있어서? 단서를 짜맞추고 작가와 독자가 게임을 하는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사건개요와 범인은 첫 장에 이미 다 나온다. 심지어 그 내용은 책 광고에 다 나와있다.

구성 자체는 딱히 새롭지 않다.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을 처음 보는게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첫 장에서 이미 독자는 상자에 담긴 물건을 꺼내어 본 것처럼 대략적인 사건의 윤곽은 알게된다. 그 다음 장부터는 꺼내어 놓은 물건을 이쪽에서 보고 저쪽으로 돌려보고 바닥을 뒤집어 보고 하는 식으로 사건을 더 자세히 살펴본다.

이런 식으로 시점을 바꾸어가면서 쓰는게 유행이었던건가? 아니면, 이런 식의 구성이 하나의 정형화된 구성으로 이미 모든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걸 나만 몰랐던건가? 이같은 구성을 몇번 썼다고 해서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에 불평을 했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괜시리 그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오쿠다 히데오 팬.)

첫 장을 읽을때에는 교사의 일방적인 말을 교실 밖에서 관찰하는 사람으로 읽었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말하는 장들을 읽고나서 다시 앞으로 돌아갔다. 전후 사정을 아는 상태가 되어서 첫 장을 다시 읽으니 이제는 내가 교실 안에서 교사의 말을 듣고 있는 학생인 것 같다. 가해자들을 A와 B라고 부르면서 관용과 배려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교사의 얄팍한 사기를 다시 보게 된다. (내가 그 교실에 학생으로 앉아 있었다면, 그 사기에 휩쓸려 나도 이지메에 참가했을까?)

어쨌거나 전체를 두번 읽어도 다른 시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든 것은 훌륭하다. 첫번째 읽을 때에는 시점 제공자의 주장을 들어주는 입장에서, 두번째 읽을 때에는 사건에 대한 윤곽을 아는 상태에서 1인칭 아니면 3인칭을 선택해서 읽을 수 있다.

주요 인물 한 명의 누나라는 액자용 인물을 제외한 시점제공 인물들은 모두 정상에서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각 장에서 시점을 제공하는 인물은 자신의 시점에서만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만 비정상으로 보인다. 이런 세세한 것을 잘 잡아낸 것은 작가의 능력이라고 해야겠다.

여기에서 흠이라면, 자신만의 절정을 준비하는 인물의 시점으로 쓰인 장은 어째 3인칭으로 먼저 쓰고 나서 변환한 것 같다는 점이다. 독자들에게 그 인물의 개연성을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1인칭 시점에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또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까지 나오는게 좀 걸리적 거린다.

개연성이 좀 많이 망가지는 부분은 다른 인물의 절정을 비틀어버리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만들었다는 마지막 장의 이야기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마지막 장의 설명으로부터 앞에 나온 이야기들의 개연성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해야할까.

그런 흠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열광적으로 몰입할 수는 없는 내용과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적어도 두번은 읽을 수 있게 만든 작가의 능력이 매우 훌륭하다. 시점이 바뀔때마다 겹겹이 싸놓은 포장지를 벗기면서 알맹이에 접근하는 듯한 느낌이 독특한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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