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틸 라이프

스틸 라이프 (Still Life), 루이즈 페니, 2014년 우리말 번역본 개정판 (초판 2011)

다른 긴 책을 읽는 중에 쉴 겸 해서 신간쪽을 서성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딱히 좋은 이유가 있어서 뽑아 든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똑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던 것 때문에 뽑았다. 표지를 슬쩍 뒤집어 보니 추리소설이라고 소개겸 광고가 되어 있네. 그래, 오랜만에 추리소설 하나 읽어보자. 소개겸 광고에 계속 소환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름의 권위는 새로운 시도를 정당화 했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것 같다. 내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군데 아귀가 안맞는게 보인다. 개정판까지 나온 번역이니까 오역으로 인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구멍은 오래전에 해리 포터 3권을 보면서, 뭐야 이거 앞뒤가 안맞네 하면서 불평하던 그 기억을 다시 살려줬다.

제일 이해가 안되는건 살인 자체가 어떻게 벌어졌는가 하는데에 대한 설명이다.

* * * Spoiler alert * * * Spoiler alert * * *

첫 페이지에 나오는 피해자의 사인은 활에 의한 관통상이다. 그런데 출혈은 별로 없는 듯이 지나가고 만다. (어라? “작고 둥근 피얼룩” [p. 7]이라고? 관통 쇼크로 인한 사망인가?) 독자를 속이기 위해 내세운 가짜 범인이 폐기하려던 피해자의 피가 묻은 활과 화살은 과학수사의 도움을 빌어 독자에게 범행 도구임을 확신시킨다. 이쯤되면 독자로서는 이 가짜 범인이 왜 그 범행도구를 가지고 있었는지, 진짜 범인과의 관계는 뭔지, 이런 이야기가 진행될 것을 예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주변 단풍나무에 “팔 미터 높이에 박혀 있”는 (p. 301) 화살이 진짜 살해도구로 튀어나온다. 엉? 그럼 왜 피살자의 화살 상처는 하나뿐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면 평지에서 쏜 화살이 평지에 선 사람을 관통해서 8미터 씩이나 상승을 하는데? 밑에서 위를 향해 쓴 화살이었다면 당연히 관통상에 그런 궤적이 남아 있어야 하고, 그렇다면 당연히 살해도구를 찾아서 높은 곳을 찾았어야 했건만, 이런 것은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가짜 범인의 화살깃이 시신에 남아있었고, 그 화살이 피해자를 관통했다는 것이 독자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 황당하다. 그 화살은 이미 죽어서 쓰러져있는 시신을 어떻게 관통했길래 시체가 일어나서 상체에 관통을 당하고 화살깃의 조각을 상처에 묻힌뒤에 다시 큰 대자로 눕게 되는지는 “미스테리”이다.

인물들 중에는 그냥 분량 늘리기에 불과한 쓸데 없는 인물이 있다는것도 영 마땅치않다. 예를 들자면 니콜은 두어번 deus ex machina를 시전하는데 그것 말고는 도대체 이야기 구조의 어떤 맥락에 들어맞는지 이해불가능이다. 단순히 comic relief를 몇번 제공하기 위해서? 아니면 책 뒤의 해설이 둘러대는 것처럼 작가의 젊은 시절의 편린이라서 꼭 출연시키고 싶어서?

이 책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하도 많아서 잘 정리되지 않는데, 하여간...

아무 생각없이 단숨에 읽고 던져 버리는 책으로 대한다면 괜찮겠지만, 추리소설을 저자가 던지는 단서를 짜맞추고 답을 내는 게임으로 읽는다면 좋은 말이 안나오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