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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腦

불평등 경제

nikolai 2015. 1. 16. 01:00

불평등 경제, 토마 피케티,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현란한 책이다. 임금소득의 불평등과 임금소득과 자본소득 사이의 불평등에 대한 몇가지 관측자료를 놓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공공경제학, 경제성장론, 노동경제학, 금융경제학 등등의 이론 꼭지들을 가져와서 붙여 놓았다. 우리나라에서 이 사람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책의 광고에 나오는 식의 강한 “처방”은 없고, 이전 연구들을 개관하면서 자기 주장을 슬쩍 섞어 넣는 식으로 구성하였다. 그런 현란한 구성만으로 미루어보자면, 대충 학부 3학년 정도의 전공과목에서 서너번 강의한 내용을 모아서 정리한 것처럼 보인다.

개관하는 정도의 내용이라서 그런지, 강한 논리적 연결이 필요한 부분을 슬쩍 비비고 지나가는 것도 있고, 독자가 (아니, 수강생이) 알아서 미시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그림들을 머리속에서 그리면서 따라가야하는 대목도 있다. 용어를 자유분방하게 사용하는 것도 독자의 보정이 많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자본”이라는 단어가 어떤 경우에는 고정자본을, 다른 경우에는 추상적/구체적 기업을, 또 다른 경우에는 은행이나 사채시장에서 유통되는 자금 또는 그런 자금을 제공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을 일일이 구분해야 한다. 제목에서 말하는 불평등도 “이유가 있는 차이”와 “근거없는 차별”까지 뭉뚱그려 “불평등”으로 지칭하는 것도 알아서 분리해내야 하는 귀찮음을 수반한다.

부차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비전문가가 번역해서 그런지 용어가 이상하다. 또, GDP나 OECD 같이 웬만한 사람은 다 알아 볼 약자들을 고지식하게 불어본에 있는 그대로 옮겨 놓아서 독자가 머릿속에서 한번 더 번역을 해야하는 수고를 요구한다. 전반적으로 보면 이전에 읽은 잘 번역된 경제학자들 이야기에 비해 불만스러운 번역이지만, 작년 봄에 말도 안되는 번역에 크게 당한 이후로는 웬만한 번역이라면 중간은 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경제학 지식이 학부 3학년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에 비추어 볼 때, 학술서적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나온 것이 신기하다. 그냥 “피케티”라는 이름이 유행하니까 그에 따른 흥행/상업성을 기대하고 번역한 것일까? 어쨌거나, 누구나 읽으라고 만든 책은 아니다. 몇년전 샌델이 유행했던 것처럼 수집가는 사겠지만, 경제학 과목을 수강하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겠다고 하면 나는 그 사람을 말리고 싶다.

한 줄로 줄여서: 겅제학 전공자라면 개설서로 읽을만 하다. (공공경제학이나 노동경제학 숙제용으로도 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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