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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腦

The Balkans: A Short History

nikolai 2014. 11. 16. 10:00

The Balkans: A Short History, Mark Mazower, 2000
(목숨 걸고 피해야 하는) 우리말 번역본: 발칸의 역사, 2014년 신판 (초판 2006)

서양근대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홈스봄의 저작들을 축으로 형성되었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발칸반도의 역사에 대한 막연한 관심도 비슷한 이유로 생겼다. “제국의 시대”에서 언급된 부분부터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거쳐 “극단의 시대”에도 지엽적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저작들은 큰 그림을 보는데에는 훌륭한 책들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엉뚱한 이유이긴 하지만, 영어로 쓰여진 세계사책에서 우리나라가 지엽적으로 다루어지는 것과 같은 괜한 억울함이 겹쳐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막연한 이유로 읽기 시작한 번역본은 또다시 나를 원본으로 날려보냈다. 원본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그저 그런 교양 개설서 정도의 수준의 책이다. 딱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역사적 서술은 없다. 단지, 내가 오스만 제국의 역사에 무지했기 때문에 몰랐던 것들만 나에게 새롭게 다가왔다. 어쩌면 저자의 교양과목 강의를 책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19세기 민족주의의 도입에 관련한 부분은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 든다. 파편적인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기만 하다는 느낌이다. 지속적으로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대한 언급은 나오는데, 민족주의적 배타성이 세르비아만 가지는 특질이었다면 발칸반도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그런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발칸반도 내의 다른 구성원들 그룹들 사이에 민족주의를 사칭/참칭한 배타성과 대립에 대해 좀더 심도있는 설명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입맛이 쓰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워낙에 기록이 없는건가?) 어쩌면 홉스봄의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다시 읽고난 뒤에 이 책을 읽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에필로그에 집약되어 있다. “발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폭력적이라는 편견은 잘못되었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흔히 말하는 “물타기” 수법을 쓴다. 서구의 나라들도 19세기까지 폭력적이었다는 사례들을 나열하고, 발칸의 폭력사태는 19세기에 서구에서 이식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문제임을 주장하는 등 20세기 중반까지도 그럴듯하게 들렸을 설명을 이어간다. 하지만, 21세기의 문턱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사태에는 그런 식의 횡단면 비슷하게 보이는 시계열 비교 대상이 없다. 이것을 대충 비비고 지나가는건 저자의 의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종합해서 한마디로 줄이면: 그냥 그 지역 역사에 무지한 나같은 사람이 입문으로 읽으면서, “편견을 가지지 말고 역사적 사실을 일단 보라”는 수준에서 저자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읽을때) 그럭저럭 볼만한 개설서이다.

이하 번역본을 목숨걸고 피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은 지난 4월 신간코너에서 번역본으로 처음으로 접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 번역본의 번역 수준은 이전에 내가 불평했던 모든 번역서적과 그 번역자들에게 불평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 책의 번역의 품질은 고등학생 독해문제 오답 수준으로까지 떨어지는 부분도 나온다.

번역자 소개에는 영어교육이 전공이고 미국에서 서양사까지 공부했다고 되어있다. 전통있는 유명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이라는 사실도 아무나 번역자로 쓰지 않았을거라는 믿음에 일조한다. 하지만 그런 번역 전문가에 대한 신뢰를 배신하고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비전문가의 저가/무료 번역 노동의 흔적은 보기가 아주 껄끄럽다.

예를 들자면,

기독교계는 에스파냐(와 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서부터 인도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는 계기가 된 최초의 지하드에 대해, 남부 이탈리아의 국토 회복 운동, 즉 이베리아의 레콩키스타와 그보다 더욱 중요한 십자군 운동으로 맞섰다. (p. 23)
원문은
To the first jihad, which swept Muslim culture into an area extending from Spain (and much of Africa) to the borders of India and China, Christendom responded with the Iberian reconquista, the recovery of lands in southern Italy and, most important, the Crusades.

영어와 서양사를 공부한 사람이 쉼표가 동격인지 열거인지 구분 못하는 오류와 이탈리아와 이베리아 반도를 구분 못하는 오류를 겹겹이 범했을리 없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에 번역본에만 있는 역자주를 달아 놓은 것을 보면 번역자 본인이 저런 오역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구심도 생긴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런 식으로 고등학교 영어와 세계사 수준에 못 미치는 오역이 종종 나온다. (이런 식으로 수능보면 명문대 진학은 어려울것 같다.) 서양사에서 기독교 전승의 의미를 무시하고 대충 직역한거라거나 (p. 108: 진실 십자가 True Cross — 억지로 역자에게 유리하게 옹호해주자면 2장 끝의 성경구절을 원용한 표현에 대한 주석으로 미루어보건대, 역자는 영문성경도 읽어본 기독교 신자이기는 하나 십자가 진본을 “진실 십자가”라고 가르치는 묘한 목사 밑에서 배워서 그게 정확한 용어로 알고 있을수도 있다.) 의미가 전혀 다른 엉뚱한 말을 적어 놓은 것이라거나 (p. 82: 그리스 펜이 되기 보다는 차라리 투르크의 총알이 되겠다 Better the Turkish bullet than the Greek pen) 역사적 맥락은 고사하고 문단의 문맥조차 파악하는데 실패한 번역이라거나 (p. 80: 그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일부 지역에서는 노동력 부족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러자 미국은 이민 제한으로 인력 유출을 차단하려고 했다. Some areas started to suffer from labor shortages before the First World War, then U.S. immigration restrictions cut off the outflow.) 이런 것들은 영어/서양사 전문가가 번역했을 가능성을 부정한다.

책 끝에 저자가 더 읽어볼만한 도서로 제시한 Guide to Further Reading을 “참고문헌”이라고 번역한 것은 고등학생의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서적을 “작품”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심지어 여러 권이 나열되어 있으면 중간에 번역을 생략하기도 한다. (p. 264) 설마 영어/서양사 전문가가 동일인의 저서를 말하는 “and his”나 그 뒤에 또 나오는 접속사 “and”를 몰라서 번역을 못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같은 오류가 p.266에도 또 나온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오류는 e-book 하나 구해서 대충 띠엄띠엄 보면서 e-book파일에 바로 한글로 바꿔쓰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둔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그런 것들이 판을 바꿔가며 책을 찍을 동안 어떻게 교정을 통과했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한 일이다.

이 책의 번역본에서 얻은 것이라면, 유명 출판사라고 해서 읽을만한 수준의 번역품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다. 신판의 번역이 이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면 초판은 얼마나 엉망이었을지 물어보기도 겁난다. 그냥 판형 크기와 표지만 바꾸고 값만 올린걸까? 원문 충실도는 고사하고 우리말이 안되는 문장조차 교정하지 못한다면 출판사라기보다는 인쇄소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결론: 발칸지역 역사 입문용 개설서를 원한다면 원서로 읽는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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