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은의 세계사, 카를로 M. 치폴라, 2015년 우리말 번역본 매우 얇다. 머릿말, 본문, 주석, 참고문헌 다 해도 본문 중간에 들어있는 그림을 빼면 100페이지 정도 밖에 안된다. 치폴라에 대한 역자의 소개와 역자 후기까지 다 더해도 150페이지 뿐이다. 너무 얇아서 이거 만원 넘게 주고 산 책이 맞는건지 잠시 당황했다. 오래전 경제사 시간에 근대 초기의 “은의 블랙홀”로서의 중국에 대한 논의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 내용은 자세히는 기억이 안나는데, 이 책의 뒷부분이 그 내용을 조금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집어 들은 이유가 바로 그 옛날에 들은 은의 무한한 수요자로서의 중국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려는 것이었으니 목적의 일부는 달성한 셈이다. 본문의 내용은 참 잘 읽힌다. 번역도 훌륭하다. 어려운..
제국을 설계한 사람들 (Engineers of Victory), 폴 케네디, 2015 우리말 번역본 오랜만에 원본을 보자 태그를 붙이는 책이 하나 더 나왔다. 전쟁사와 거리가 먼 경력을 가진 번역자가 둘이 나누어서 했다고 명시한 것에 살짝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역자 후기 마지막에 “[…] 전문가들, 동호인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적어 놓았길래 그것을 믿고 책을 집어들었다. 이제와서 뒤늦게 하는 말이지만, 역자들을 도와주었다는 그 전문가들과 동호인들이 흔히 말하는 “밀덕”이라고 마음대로 상상한건 순전히 나의 잘못이다. 기본적인 군사용어조차 잘못 번역되거나 이상한 (직역)단어로 대치한 것을 못 잡아냈다면 그사람들은 밀덕일 리가 없겠지.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분야의 전문가이고 동호인이었을까? 예를 딱 ..
템플러 (The Templars), 마이클 해그, 2015년 우리말 번역본 스티븐 킹이 말하길 글을 쓰는건 텔레파시라고 했었다. 이 책은 소설만 텔레파시가 아니라는걸 보여준다. 성전기사단. 흥미를 돋우는 제목이다. 저자는 아마도 “다빈치 코드” 같은 공상소설이 마치 역사소설인듯이 인식되고 있는 현실에 격분한 것 같다. 앞의 4부의 내용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역사 교양서 수준이다. 그림과 사진도 많고 박스도 있는 것이 어린이용 교과서 같다는 느낌마저 준다. 편집이야 어떻든간에 내용은 성전기사단에 관련된 역사를 쭉 훓어주는 것이 나름 만족스럽다. 그런데 5부에 가서 성전기사단이 해체된 이후의 일들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저자가 감정을 통제하기 어려워 하는게 보인다. 5부의 첫장은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 남..
Maus, Art Spiegelman 우리말 번역본: 쥐, 2014 만화로 전달하지 않았다면 너무나도 무거웠을 내용이다. 하지만 만화가 아니었다면 심상(心像)이 없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추상적으로 받아들였을 내용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밟아 나가는 것은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인 듯이 느끼게 한다. 마치 스타트렉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개인의 입장에서 다시 살아가게 한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닐테니까 퓰리쳐상까지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는 현실은 내가 이 만화를 전적으로 찬양할 수 없게 한다. 블라덱이 흑인에 대해 가진 편견과 그에 대한 프랑소..
비잔티움 연대기 1: 창건과 혼란 (Byzantium: Early Centuries), 비잔티움 연대기 2: 번영과 절정 (Byzantium: Apogee), 비잔티움 연대기 3: 쇠퇴와 멸망 (Byzantium: Decline and Fall), 존 줄리어스 노리치, 2007 우리말 번역본 얼마전에 끝낸 “현대 중동의 탄생”의 결론 장에 그 책의 저자는 중동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서로마 이후의 서유럽에 비추어 유추하였다. 그 유추가 심하게 서유럽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다시 읽기 앞서 지난번에 읽을 때에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적어 놓았던 것을 닻 삼아 내린다. 다시 읽기가 끝나면 새롭게 든 생각은 나중에 덧붙이기로 하고... 남들이 말하기를, 이 책의 저자가 ..
현대 중동의 탄생 (A Peace to End All Peace), 데이비드 프롬킨, 2015년 우리말 번역본 책을 읽다보면 우리말이 이상한 부분이 종종 나온다. 그럴때마다 원문이 무엇이었을까 추측하며 영작해서 꿰맞추곤 했기 때문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건 밑에 따로 더 쓴다.) 내가 오해를 한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야기 하자면... 책 내용을 관통하는 주인공은 영국이다. 영국 이외의 국가는 그냥 “잡국(雜國)”이다. 그 주인공을 가지고 저자가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국 개새끼”이다. 영국만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잡국”이라서 욕먹을 기회가 적은 것 뿐이다. 프랑스는 얍삽하고, 러시아는 멍청하면서도 야비하고, 오스만 투르크/터키는 바보같지만 가끔씩 영악하..
The Balkans: A Short History, Mark Mazower, 2000 (목숨 걸고 피해야 하는) 우리말 번역본: 발칸의 역사, 2014년 신판 (초판 2006) 서양근대사에 대한 나의 관심은 홈스봄의 저작들을 축으로 형성되었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준의 지식을 넘어서는 발칸반도의 역사에 대한 막연한 관심도 비슷한 이유로 생겼다. “제국의 시대”에서 언급된 부분부터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를 거쳐 “극단의 시대”에도 지엽적인 것처럼 다루어지는 것이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저작들은 큰 그림을 보는데에는 훌륭한 책들인 것은 분명하다. 다만, 엉뚱한 이유이긴 하지만, 영어로 쓰여진 세계사책에서 우리나라가 지엽적으로 다루어지는 것과 같은 괜한 억울함이 겹쳐 있다는 것은..
케인스 하이에크: 세계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Keynes Hayek : the clash that defined modern economics), 니컬러스 웝숏,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사후 약방문: 아마존에 가서 진티스의 리뷰를 먼저 읽었어야 했다. 서문의 마지막 문단만 보면 대단한 책인 것 같다. 지금 자유시장이 옳은가, 정부 개입이 옳은가를 놓고 1930년대처럼 다시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결국 케인스와 하이에크 중 누가 옳았던 것일까? 이 책은 80년 동안 경제학자와 정치인을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던 이 질문에 답함과 동시에, 특이한 이 두 인물의 뚜렷한 입장 차이가 오늘날까지도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커다란 간극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조명하고자 한다. (p. 19) ..
비엔나: 천재들의 붉은노을 (Fin-de-siècle Vienna: Politics and Culture), 칼 쇼르스케, 2010년 우리말 번역본 내가 이 책에 막연한 관심을 가진 것은 홉스봄이 “제국의 시대”에서 여러번 인용하고 언급해서였다. 무슨 책이길래 본문에서도 인용하고 본문 뒤의 더 읽어볼 책 목록에 올려서 독자에게 권했을까? “제국의 시대”를 읽을 당시에는 원서도 번역서도 서점에는 없었고 외국에 주문해서라도 읽고 싶을 정도로 궁금증이 크지는 않아서 그냥 그렇게 잊혀졌다. 얼마전 할 일 없이 책방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맞닥뜨린 이 번역본은 나를 살짝 흥분하게 만들었다. 하드커버에 화려한 장식을 넣은 표지, 컬러 화보, 멋진 절 번호 장식 등등 휘리릭 책장 넘기면서 받은 외관에 대한 인상은 환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