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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腦

Maus

nikolai 2015. 6. 7. 23:00

Maus, Art Spiegelman
우리말 번역본: 쥐, 2014

만화로 전달하지 않았다면 너무나도 무거웠을 내용이다. 하지만 만화가 아니었다면 심상(心像)이 없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추상적으로 받아들였을 내용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밟아 나가는 것은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인 듯이 느끼게 한다. 마치 스타트렉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개인의 입장에서 다시 살아가게 한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닐테니까 퓰리쳐상까지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는 현실은 내가 이 만화를 전적으로 찬양할 수 없게 한다. 블라덱이 흑인에 대해 가진 편견과 그에 대한 프랑소와즈의 반발은 그냥 “소시민”으로서의 유태인 개인의 문제로만 한정짓고 넘어가기 어렵다. 팔레스타인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유태인들의 만행을 보면, 인종에 근거한 차별의 부당함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그런 측면에서 프랑소와즈의 주장이 그냥 묵살된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고 하겠다.

한편, 중간 중간에 작가 자신이 이 만화를 그리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자신의 만화—실존만화인지 아니면 이야기에 삽입하기 위한 가상작품인지 모르지만—를 넣는다거나, 이 만화를 그리는 것에 대한 컷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넣는다거나 하는 것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개인의 경험과 그에 근거한 고발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문제에 대한 치유로서의 “글”쓰기로 보인다. 마치, 영화 Big Fish같이 아버지와의 관계가 썩 좋지 못한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에 앞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평안하게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의심이 생기는 것은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만화를 삽입해서 자기에게 죄의식을 남기고 자살한 어머니를 비난하는 결말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게 아주 떨떠름한 뒷맛을 남긴다.

한마디로 줄이면: 만화라는 매체가 주는 선입견을 불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진지한 내용이지만, (작가 아버지의) 개인사의 전달에 있어서 작가의 불필요한 개입이 좀 많다. 이것을 걸러내고 읽는다면 괜찮은 내용이다. 그러나.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유태인들이 벌이는 만행들을 같이 보아야 21세기의 관점에서 균형잡힌 조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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