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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腦

현대 중동의 탄생

nikolai 2015. 4. 24. 02:00

현대 중동의 탄생 (A Peace to End All Peace), 데이비드 프롬킨, 2015년 우리말 번역본

책을 읽다보면 우리말이 이상한 부분이 종종 나온다. 그럴때마다 원문이 무엇이었을까 추측하며 영작해서 꿰맞추곤 했기 때문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히 이해했는지는 자신이 없다. (이건 밑에 따로 더 쓴다.) 내가 오해를 한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이야기 하자면...

책 내용을 관통하는 주인공은 영국이다. 영국 이외의 국가는 그냥 “잡국(雜國)”이다. 그 주인공을 가지고 저자가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국 개새끼”이다. 영국만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잡국”이라서 욕먹을 기회가 적은 것 뿐이다. 프랑스는 얍삽하고, 러시아는 멍청하면서도 야비하고, 오스만 투르크/터키는 바보같지만 가끔씩 영악하게 나온다. 아랍은 국가가 아니지만, 집합적으로 아랍 무슬림에 대해 (오리엔탈리즘에 찌들은 듯한 관점을 가지고)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게 잊어버릴 수 없도록 반복된다. 저자가 까내리지 않는 국가는 미국뿐이다. 그래도 미국의 몇몇 개인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하기도 하는데, 유독 유태인만은 집합적으로 선의 담지자이자 불운한 피해자로 그려진다. 이런 편향된 시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난 20년간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는 광고가 수긍이 가는 교양서이다.

책의 줄기는 이렇게 흘러간다: 처음 1/3은 1차대전에서 보여준 영국 관료/군인들의 무능하고 멍청함을 다양한 표현과 어조로 조롱한다. 여기에 현재 중동 지도의 “원흉”들이 쭉 소개된다. 그 다음 1/3은 1차대전의 마무리와 종전후의 처리에 대해 영국 대표로 로이드 조지가 샌드백이다. 마지막 1/3은 (특히 마지막의 12부는) 처칠을 상대로 (약간 약해진 어조로) 난타질 함으로써 900페이지에 가까운 조롱/비난/폄하의 잔치를 마무리한다. 중간에 (53장 마지막 절) 제정신으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 영국 언론에 대해 잠시 언급하는 것을 빼면 영국에 대한 긍정적인 말 하나 없이 책이 끝난다.

영국이 저지른 범죄와 다름없는 행위는 욕을 먹어도 싸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결정을 폄하하는 어조로 밀어붙이는 것은 저자의 서술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리기 딱 좋다. 예를 들어, 9부에 서술된 내용중에, 1차 대전 이후에 처칠이 다시 입각해서 중동의 점령군을 철수시키는 것은 제한된 정보하에서 비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를 모른채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처칠을 비판할 수는 없다. 후대의 역사가가 가진 정보는 당시의 처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그 정보를 몰랐다고 비판한다는 것은, 60년대에는 밥이 없어서 제대로 못 먹었다는 노인의 말에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 하면서 핀잔을 주었다는 초등학생의 사고수준이지 역사가의 사고수준이 아니다.

마지막 장의 결론 겸 평가에서는 1922년 이후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중동의 혼란을 (서)로마의 멸망 이후의 서유럽 상황에 비교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서유럽은 로마 멸망이후 1500년이 지나서야 민주적인 방식이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서 로마에 비견할만한 질서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에 비추어, 중동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예상을 제시한다. 딱히 수긍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애매한 서술이다.

수긍이 가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적으로 서유럽 중심주의에 찌들어있는 저자가 보인다. 3장에서나 아랍 무슬림에 대한 서술이 나올때마다 오리엔탈리즘의 모양을 보여준 바가 있기에 더욱더 의심스럽다. 서로마가 로마제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오랜동안 서유럽 사람들이 무시했던 사실이다. 콘스탄티노플에 자리잡은 동로마는 그 이후로도 1000년 동안 제국을 유지했다. 물론 부침을 거듭했고, 1000년 내내 지중해 연안의 중동을 지배했던 것은 아니지만, 제국적인 질서는 유지되었다. 그리고, (동)로마를 밀어내고 중동을 지배한 세력들은 제국 또는 제국에 가까울 정도로 정비가 되어있는 국가를 운영했었다. 이런 것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중동은 그저 유목민이 떼지어 도적질이나 하던 동네라고 본다면 저자와 같은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한편, (서)로마의 멸망후 그 자리에 자리잡은 것은, 서로마를 멸망시킨 “야만인”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종교적 전통을 공유하지도 않았다. 이에 반해, 중동을 지배하던 제국을 멸망시킨 것은 (저자가 깔보는) 아랍인들이 아니다. 그 아랍인들은 강력한 이슬람교 전통을 공유하고 있고, 현재까지도 신정일치나 다름없는 정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유사점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비슷한 제국주의적 침탈과 분할의 역사의 결과로 현재 중동과 비슷하게 또는 더 심하게 막장을 달리는 아프리카의 경우까지 생각해 보면 5세기 이후의 서유럽에 비교해보려는 시도는 영 핀트가 안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예측을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저자가 책을 쓴 이후로 25년간 벌어진 일들을 알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이후의 역사와 비교하는 것은 잘 안 맞더라도, 저자가 이끌어낸 결론은 어쩐지 맞는 듯하다. 소 뒷걸음에 잡은 쥐인지, 아니면 올바른 직관이지만 다른 논리적 근거가 필요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무엇이 맞든지간에 생각해 볼 만한 일인 것은 틀림없다.

마무리로 한 줄로 평하자면: 저자의 서술에 대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이 책은 읽고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다. 아마도 그런 측면이 이 책에 대한 많은 찬사를 끌어냈으리라.

책의 줄기에서 좀 거리가 있는 지엽적인 이야기들:

  • 책 뒤의 거의 100페이지에 가까운 출전을 적은 주석과 참고문헌 목록은 학술서적 같은 중압감을 줄 수도 있지만, 본문에서 종종 나오는 관심법 수준의 추측성 서술은 이 책이 누구나 읽으라는 교양서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 한편, 10년이 안되는 기간을 다루고 있지만, 그래도 지도가 달랑 4장만 포함된 것은 매우 아쉽다. 그나마 둘은 1차대전의 이전/이후의 경계선만 그어놓았고, 나머지 둘은 본문에서 각각 한 장의 내용에만 해당하는 그림이면서도 매우 부실하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웹 검색으로 관련 지도를 찾아보는 사람이 나 말고도 분명 여러명이 있을 것이다. (곁가지로 덧붙이면,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나온 경계선을 찾다가 발견한 위키피디아 페이지에 이 책이 다루는 주요 협정들에 관한 링크 등 다른 이야기가 있어서 의외의 독서보조가 되었다.)
  • 38장에 나오는 1차세계대전과 제국주의적 팽창의 인과관계에 대한 문단은 좀 어리둥절하다. 세계사 과목에서는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이 충돌하여 1차대전이 벌어졌다고 가르치고 외워서 시험보는데, 저자는 그 인과관계를 거꾸로 돌려 1차대전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제국주의적 영토 획득을 추구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읽다가 어라?하고 멈추게 만드는 부분이다.
  • 10부의 내용은 벌써 4년 된 아랍 민주화 물결을 생각나게 한다. 정확히 대응되지는 않지만, 지배자들에 대한 저항과 함께 대자적 의식의 성장이라는 부분의 유사성은 부정할 수 없다. 어쩌면 비교 탐구해 볼 만한 영역인지도 모르겠다.
  • 그리스-터키 전쟁 중에 그리스군의 (꽤나 바보같은) 이스탄불 진입시도를 연함(점령)군이 막은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왜 그랬을까? 위키피디아를 봐도 이유가 안나온다.
  • 서문에서 영국-러시아간의 The Great Game의 연장선으로서 중동분할을 서술한다고 하고, 2장에서 대단히 간략하게 그 “그레이트 게임”이 뭔지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연원을 찾아야 할까? 저자와는 반대로, 현재 중동의 상태를 직접적으로 결정한 내용만 전달하자면, 1차대전 중의 조약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내용중에 8부 이후만 책에 담았어도 충분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색으로 찾아낸 2007년 번역판 “그레이트 게임”이라는 책이 흥미를 돋우는 것도 사실이다.)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읽어보라고 쓴 책은 역자 후기에 나오듯이 “압도적 분량이 짧게 느껴질 만큼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갈 수 있”어야 한다. 불행한 일이지만, 번역이 좀 이상해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두번 세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수고를 자주 해야한다. 그래서 그렇게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번역에 의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책 전체의 0.5%도 안되는 지점을 읽었을 때이다. 2장을 읽다가 책 뒤의 주석을 보려고 넘겼더니 주석을 번역하지 않았다. 어? 이거 전에 한번 당한 적이 있는데? 번역자가 누구지? 표지를 다시 보고 날개에 나온 역자 소개를 보니, 역시나 목숨걸고 피해야 하는 번역서의 번역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끝까지 읽은 것은 4만원 넘게 주고 산 책이라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억지로 다 읽고 나서 보니, 내가 바로 “미련 곰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번역공장을 운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에 저질번역에 학을 뗀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영어 실력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적어도 2명 이상 참여하여 대충 분량을 나누어 번역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자면, 군사분야의 영어에 취약한 사람이 번역한 부분과 군사용어를 아는 사람이 번역한 부분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또 다른 예로 음차를 할 때 “트랜스코카시아”라고 적는 사람과 “트란스요르단”라고 적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추측된다. 이런 것들이 여러 사람이 나누어 번역하다가 생긴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이 번역하면서 뒤늦게 알아서 차이가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여러명이 번역하는 것을 내가 본 것도 아니고 추측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의 이전의 오류를 고치지 않는 그 게으름/고집은 또 다른 측면에서 기피사유가 된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에 관심이 있다면 비슷한 내용을 다루는 다른 책(예컨대, 위키피디아에 출전으로 나오는 책들)을 읽거나, 어떤 이유에서건 반드시 이 책만을 읽어야 한다면 웬만하면 원서로 읽기를 권한다. 교양과목의 필독서로 지정되어 억지로 읽어야 하는 저학년 대학생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책을 읽다가 이상한 문장을 발견할 때마다 이게 원문은 무엇이었을까 영작해보며 추측하는 것보다는 그냥 영문독해 하는게 훨씬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이런 내용을 교양으로 읽는 사람이 책이 영어로 쓰여있다고 못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테니까.

뱀발: 지난 주말 신문 들추다가 “이슬람 제국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신간소개를 봤다. 그러지 않아도 중동의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를 새삼 느끼고는 중동에 관한 책을 이리저리 읽어보는 터라 이것도 사야겠다고 메모지에 제목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원서를 구해 읽을 시간이 날 때까지는 접어두기로 결정했다. 몰라서 당한거 한번, 미련 곰탱이라서 당한거 한번, 이렇게 두번씩이나 당하고도 또 당한다면 그건 내가 상상을 초월하는 바보라는 것만 증명할 뿐이니까.

뱀발 2: 다른 사람들은 번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려고 검색을 해보니, 이 번역자의 조악한 번역품질에 대한 불평이 적어도 2006년부터 웹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어떤 인터넷 언론에 서평을 올린 사람은 번역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이고 있다. 번역서를 과연 읽어보기는 했는지 의심스럽게 “물론 여기에는 많은 역사서를 우리말로 옮겨온 역자 이순호의 지적 축적과 유려한 번역 솜씨가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과대/과장/허위) 광고해 놓았다. 서평을 적은 사람과 번역자 사이에 어떤 친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인터넷 언론을 찌라시라고 경멸하는 이유를 하나 알게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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