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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腦

비잔티움 연대기

nikolai 2015. 4. 26. 23:00

비잔티움 연대기 1: 창건과 혼란 (Byzantium: Early Centuries),
비잔티움 연대기 2: 번영과 절정 (Byzantium: Apogee),
비잔티움 연대기 3: 쇠퇴와 멸망 (Byzantium: Decline and Fall),
존 줄리어스 노리치, 2007 우리말 번역본

얼마전에 끝낸 “현대 중동의 탄생”의 결론 장에 그 책의 저자는 중동의 미래를 예측하면서 서로마 이후의 서유럽에 비추어 유추하였다. 그 유추가 심하게 서유럽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다시 읽기 앞서 지난번에 읽을 때에는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적어 놓았던 것을 닻 삼아 내린다. 다시 읽기가 끝나면 새롭게 든 생각은 나중에 덧붙이기로 하고...

남들이 말하기를, 이 책의 저자가 역사 전공자가 아니라서 부족한 부분이 꽤 있다는 얘기를 했다. 어떤게 부족한지 구체적으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나야 어차피 인기있는 역사교양서를 읽는 것에 불과하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역사 전문가만이 잡아낼 수 있는 미묘한 것이라면 나는 눈치채지 못하고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남들의 말을 확인할 기회는 의외로 빨리 왔다.

1권의 44페이지에서 새로 시작하는 문단에 나오는 내용에는 과거의 기록중에 저자가 허풍이라고 치부하는 내용이 있다. 전혀 필요없는 서술이기도 하지만, 꼭 적어야겠다면 주석에나 써야 할 내용을 굳이 본문에 인용해 놓고는 허풍이라고 자기의 추측을 덧붙인 것은 본격적인 학술서나 진지한 교양서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 문단을 읽는 시점에서 나는 이 책을 이문열이 번역하고 자기 마음대로 감상과 주장을 덧붙인 삼국지연의와 동급으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이 책은 나에게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책이 되었고,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다른 역사책을 읽을 때처럼 공부하는 자세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1권 뒤의 역자후기를 먼저 읽었더라면 처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읽었을 것 같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평을 먼저 보고 생각해 보려는 중이라면, “옮긴이의 말”에서 발췌한 다음 인용문이 결정에 도움이 될 듯하다.

지은이는 […] 정식 역사서라면 감히 하지 못할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가 하면, 고상한 역사서라면 감히 담지 못할 표현을 거침없이 쏟아 낸다. […] 지은이의 그런 노력은 이 책을 드라마 같은 역사서로 만들었다. […] 중국의 “삼국지”를 읽은 독자라면 이 책에서 그 보다 더 흥미로운 인물 열전과 더불어 正史가 주는 참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권, pp. 651–652)

여기서 살짝 엿볼 수 있는 것은, 역자도 사실은 이 책이 “이야기로 듣는 후기 로마사” 또는 “동로마사 연의”라고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설마 일반인이 정사 삼국지를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그래서 그런지 역자 주석도 처음에는 진지하게 동양사와의 비교/대조를 하면서 내용을 풍부하게 하다가, 2권의 중간쯤에가면 저자의 마구잡이식 태도를 본떠서 자기 나름대로의 추측을 덧붙이기도 한다. 이야기가 더 나아가서 3권에 가면 1차대전이 일어나기 700년 전에 일어난 일을 1차대전의 먼 원인이라고 갖다 붙이는 만담까지 역자 주석으로 달아 놓기도 한다. 진지한 교양 역사서라면 이런 만용을 부리지는 못했으리라.

위에 적은 것 말고도, 읽을 당시에 우리말이 이상한 것을 구글북스 등을 뒤져가며 원문 대조해서 적어 놓은 목록이 있다. 하지만, 고등학생만도 못한 번역을 버젓이 내놓는 사람에게 두번이나 당하고 나니,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 놓았던 오역들은 단순실수로 보인다. 이 책의 번역자가 영어 전공자도 아닌데 영어 속담 모를 수도 있고 부사와 전치사를 헷갈릴 수도 있다. 또, 역사 전공자도 아닌데 영어식 이름으로 적힌 원문을 최대한 그리스식/로마식으로 바꾸어 넣는 과정에서 실수할 수도 있겠지. 역자 주석에서 영어식 이름을 원래대로 복구하는게 힘들다고 징징댈 정도로 노력한 것을 보면, 약간의 오역은 실수로 봐도 될 것 같다. 어차피 원문 자체가 진지한 교양서라기 보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책이라서 그렇게 하더라도 역사왜곡이 생기는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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