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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 하이에크: 세계경제와 정치 지형을 바꾼 세기의 대격돌 (Keynes Hayek : the clash that defined modern economics), 니컬러스 웝숏,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사후 약방문: 아마존에 가서 진티스의 리뷰를 먼저 읽었어야 했다.

서문의 마지막 문단만 보면 대단한 책인 것 같다.

지금 자유시장이 옳은가, 정부 개입이 옳은가를 놓고 1930년대처럼 다시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결국 케인스와 하이에크 중 누가 옳았던 것일까? 이 책은 80년 동안 경제학자와 정치인을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던 이 질문에 답함과 동시에, 특이한 이 두 인물의 뚜렷한 입장 차이가 오늘날까지도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커다란 간극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조명하고자 한다. (p. 19)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읽어본 이 문단은 대단한 낚시질이다. 저자가 주는 답은 케인즈가 절대적으로 옳았다는 신앙고백이다. 경제적 또는 경제학적 통찰은 책이 끝날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그나마 경제학적 내용은 케인즈와 하이예크의 저술에서 스크랩하듯이 잘라온 구절에 현실을 억지로 꿰맞추고 있다. 그 꿰맞추기도 신앙심이 너무 깊은 나머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게 해놓는다. 예컨대, 책의 말미에서, 최근의 서브프라임사태와 그에 따른 불황의 원인에 대해서는 (서브프라임 사태라는 이름에서 벌써 방만한 금융기관이 보임에도) 눈가리고 아웅하면서, 케인즈의 오래전 권고대로 따르다가 말다가 하는 미국의 정책을 보고 선교를 하고 있다.

이런 신앙심 돈독한 선교행위를 참고 견뎌낼 수만 있다면, 나름대로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언론 종사 경력에서 보이듯이, 글 자체는 술술 읽히게 써있다. (그리고 번역도 훌륭하다.) 진티스가 잡지 People에 비유한 것에 덧붙여 나만의 비유를 더하자면, TV에서 나오는 역사 다큐멘타리처럼 보기 좋다. 학술 서적처럼 집중해서 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집중력도 요구한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일화들과 야사들은 학술서적과 달리 지치지 않고 계속 읽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읽으면서 주의할 것은 TV다큐멘타리에서 종종 생기는 문제처럼 여기저기 오류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오류를 잡아내면서 읽는 것이 진티스의 말대로 오락으로 즐기는 독서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환율인상과 평가절상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저자와 이를 보정하기 위해 역자가 덧붙인 주석(p. 89)을 놓고 어느게 문맥상 맞는 용어인지 고르는 1학년 교양 경제학 퀴즈를 즐기는 오락이 가능하다.

이미 말했지만, 이 책은 번역이 잘 되어 있다. 저자가 하이예크에 대해 가진 적대적이면서 깔보는 감정을 여과없이 전달하는 단어들을 적절한 우리말로 옮겨서 저자의 속내를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한 것이 매우 훌륭하다. 중간 중간의 역자 주석들도 훌륭하지만, 특히 마지막 장에는 저자의 오독이거나 오독을 가장한 의도적인 하이예크 중상일 수도 있는 부분을 역자 주석에 해설과 함께 하이예크의 원문을 추가하여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다. 다만 사람 이름을 “실제 발음을 존중해 표기(p. 14)”하여 “발라스”니 “레르네르”니 하는 식으로 적어서 경제학 공부를 좀 해본 사람과 대화하기 어렵게 만든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쌔처”에 가깝게 들리는 이름은 실제 발음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리나라에서 흔히 불리는대로 “대처”라고 적은 현지화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한 문장으로 줄이면, 경제적 통찰보다는 일화와 야사 위주의 흥미를 찾는다면 좋은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책이다.

뱀발: 언제까지 moral science를 도덕과학이라고 단어대치 할 것인지는 답답하다. 이 책은 “윤리과학”이라고 대치해 놓아서 신선한 웃음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그게 딱히 이 책을 번역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다. 몇십년전에 나온 케인즈와 그 해설서를 우리말로 옮긴 사람들은 인문적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인지 moral science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도덕과학”라고 대치했다. 그래도 그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 검색이라는 도구가 없었으니 몰이해의 정상을 참작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그 말의 독일어 번역어 Geisteswissenschaft를 몰라서 그걸 참조한 번역은 할 수 없더라도, moral science를 검색했을때 나오는사전 내용이나 위키피디아 페이지를 읽어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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