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2016년 우리말 번역본
전작 오베라는 남자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더라도 80점 수준의 처녀작이었던 기억에 읽기 시작했다. 마침 교보문고에서 전자책을 대여하면 대여금을 리베이트하는 판촉행사도 있어서 이 책으로 골랐다. (책 내용과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이 책을 읽을거면 전자책 말고 인쇄된 책으로 보라고 하고 싶다. 전자책은 역자주석이 페이지 중간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등 원고를 대충 변환프로그램에 집어 넣어서 나온 결과물을 사후보정 없이 그대로 전자책으로 출시했다는 느낌이 든다.)
광고문구를 보면서 내가 기대했던 주인공은 미스터 빈의 거울버전이었다. 미스터 빈이라는 캐릭터는 성인의 몸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는 인터뷰가 있다. 그것과는 정반대로 어린아이의 몸에 들어간 성인관찰자로 화자가 나올 것이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었다. 그 예상이 빗나간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예상치 못했던 작가의 이야기에 놀라움과 감동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이야기의 진행은 매우 난삽하다. 두 개의 평행을 달리면서 현실과 환상의 대비를 보여주는 이야기 쌍이 잘 어우러져야 할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 현실과 환상이 다른게 아니라는 것은 독자에게 일찍 보여주기는 하는데, 중간중간에 대비하지 못하게 이빨이 빠진 부분이 있다. 단순히 이야기 전개상에 필요한 것을 독자에게는 미리 알려주고 그것을 살살 풀어서 보여주는 장치에 한정해서 볼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빨 빠진 부분때문에 이야기의 줄기를 잡기 어렵다. 화자가 어린아이라는 핑계를 대고 난삽함을 변명할 셈이었던 것인가?
개연성의 연결고리도 여기저기 터져있다. 적어도 화자의 나이만큼 같은 건물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 그만큼 오랜기간 동안 갈등을 누적하고 있었다면 그런 갈등이 편지 한장으로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하는건 무리다. 그나마 편지가 나타나는 것도 그냥 마술같이 튀어 나온다. 바로 전날 대패질했던 옷장에서 편지가 나와도 작업하던 사람은 전혀 존재를 모르는 슈뢰딩거의 편지다. 그런거는 어차피 소설이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개에게 초콜렛과 아이스크림을 먹이는 장면이 여러번 반복되는 것은 너무 심했다. 마치 양영순이 결혼 전에 말도 안되는 망상(상상이 아니고 망상이 맞다)으로 여자를 그려놓았던 만화쪼가리를 보는 느낌.
예리한 독자가 지적할게 뻔하니까 아예 대놓고 해리포터 베껴왔다고 중간중간 할머니와 화자를 통해 밝히는 건 오마쥬라고 치더라도, 영화에서 지나치게 많이 복사해 온 것이라거나 뒤로 갈 수록 저자 자신이 직접 등장해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하지 않고 독자에게 직접 접근하려고 하는 등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상당히 많다. 이야기가 집중할 수 없게 난삽해서 그런 면이 더 많이 보이는건지도 모른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끝내야할 타이밍을 못잡아서 헤매는 것을 보니까 나는 이 작가의 팬이 되기는 글렀다.
마케팅의 승리.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여섯자로 정리할란다. 저자 본인이 진부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것이 힘들었는지 체호프의 총까지 일일이 적어놓을 정도로 지면 늘리려 애쓰는 모습을 보는게 안타깝다. 다른 사람과 화제를 공유하기 위해 읽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비문학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나로서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을 때에나 찾아갈 작가목록에 이 사람을 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