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2016년 우리말 번역본 전작 오베라는 남자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더라도 80점 수준의 처녀작이었던 기억에 읽기 시작했다. 마침 교보문고에서 전자책을 대여하면 대여금을 리베이트하는 판촉행사도 있어서 이 책으로 골랐다. (책 내용과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이 책을 읽을거면 전자책 말고 인쇄된 책으로 보라고 하고 싶다. 전자책은 역자주석이 페이지 중간에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등 원고를 대충 변환프로그램에 집어 넣어서 나온 결과물을 사후보정 없이 그대로 전자책으로 출시했다는 느낌이 든다.) 광고문구를 보면서 내가 기대했던 주인공은 미스터 빈의 거울버전이었다. 미스터 빈이라는 캐릭터는 성인의 몸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보여주려는 것이었다는 인터뷰가..
테메레르 1–7, 나오미 노빅, 2007–2013 우리말 번역본 이 시리즈를 집어든 것은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시리즈 마지막 권(제9권)이 이번 달에 나오는데 아직도 8권이 번역이 안되었네 하는 소리를 하길래 생긴 막연한 흥미 때문이었다. 막연한 흥미였으니까 사지는 않고 빌려 보았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빌려서 읽기만 하고 사지는 않기로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용을 공군용 기체 겸 전투병으로 등장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그것에 끌려서 1권을 읽어나가는데, 시리즈 내내 산재한 하이틴 로맨스 급의 용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묘사와 대화가 흥미를 뚝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그 뒤에도 용에게 너무나 많은 성격을 부여한다. 기본적으로 전투기 겸 전투병이라는 설정 외에, 비행사의 “연인”, 보호자,..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2015년 우리말 번역본 츤데레 꼰대. 이렇게 쓰면 스포일러라고 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알고 읽어도 재미는 있다. 적절한 위치에 웃음이 터지게 배치한 사건들이 읽는 내내 즐겁게 한다. 즐겁고 재미있는 것은 맞지만 이 책을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겠냐고 묻는다면 “읽어 보는거야 뭐...”라고 답하겠다. 우선적으로 이 책은 흔한 상업적 성공의 “공식”에 때려박은 티가 난다. 등장인물 구성부터 그렇다. 주인공의 성격이야 논외로 하고 이란 출신의 인물을 하나 집어넣어 소수인종 또는 다문화의 요소를 넣고 옆집 뚱땡이와 커피집 동성애자 아들, 장애인, 거만한 공무원 등 미국 코미디나 드라마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드라마” 클리셰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다 들어있다. 알게 모르게 그런 배경..
체육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수족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2015년 우리말 번역본 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오타쿠가 아니면 손대지 말라고 겁을 주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구입을 한 책들이 아니라 빌려 읽은 책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다. 표지가 주는 오타쿠 지향성도 별로지만, 내용 진행도 오타쿠만 읽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듯하다. 역자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가 원래 오타쿠용 소설로 작가생활을 시작하려고 시도했었다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겠지. 오타쿠나 알아들을만한 참조들은 둘째치고라도, 만화에서나 통할 심하게 비현실적인 인물설정부터 걸리적 거린다. “헤이세이 엘러리 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역자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일본 문학평론계와 나는 매우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
벚꽃, 다시 벚꽃 (桜ほうさら), 미야베 미유키, 2015 우리말 번역본 어쩌면 작가의 작품세계에 들어가는 첫 책으로는 잘못 집었는지도 모르겠다.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가 추리작가로 유명하다는 것까지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추리소설 자체를 열정적으로 찾아다니지는 않는지라 한 권도 읽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르는건 나뿐이라고 핀잔을 주듯이 마지막 페이지에는 지난 6월에 이미 불과 1달만에 4번째 찍은 것이라고 나와있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은 부분도 있기는 하다. 2013년에 발표되었고 뒷표지 날개에 나와있듯이 이미 2014년 신년 초하루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이제서야 번역이 되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평소 스타일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근거도 없는 ..
Maus, Art Spiegelman 우리말 번역본: 쥐, 2014 만화로 전달하지 않았다면 너무나도 무거웠을 내용이다. 하지만 만화가 아니었다면 심상(心像)이 없어서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추상적으로 받아들였을 내용이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세계사 시간에도 배우는 내용이지만,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을 다시 밟아 나가는 것은 주인공과의 동일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인 듯이 느끼게 한다. 마치 스타트렉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개인의 입장에서 다시 살아가게 한다. 나만 그런 경험을 한 것이 아닐테니까 퓰리쳐상까지 받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 뒤에 가려져 있는 현실은 내가 이 만화를 전적으로 찬양할 수 없게 한다. 블라덱이 흑인에 대해 가진 편견과 그에 대한 프랑소..
보이지 않는 수호자 (El guardián invisible), 돌로레스 레돈도,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때 표지의 감촉이 나의 첫 Thinkpad를 기억나게 했다. 우레탄 코팅이 되어있는 상판의 독특한 느낌에 매료되었던 그 기억에 더 따지지도 않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 늘 그렇지만, 그런 식으로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항상 후회로 이어진다. 뒷 표지에 광고문구 겸으로 박아 놓은 글귀는 좀 있어 보인다. “청소년의 미래를 보호할 능력이 없는 사회는 실패한 사회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본 이 광고문구는 정치 상업주의의 전형이다. 마치 책 내용이 올해 봄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불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슬쩍 찔러놓지만, 그런 내용은 주인공의 한차례 독백으로만 나올 뿐..
고백 (告白), 미나토 가나에, 2009년 우리말 번역본 추리소설로 소개받아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러나 추리소설이 아니다. 도대체 소개한 사람은 왜 이걸 추리소설이라고 얘기했을까? 사망/살인 사건이 있어서? 단서를 짜맞추고 작가와 독자가 게임을 하는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은 아니다. 사건개요와 범인은 첫 장에 이미 다 나온다. 심지어 그 내용은 책 광고에 다 나와있다. 구성 자체는 딱히 새롭지 않다.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다시 이야기 하는 것을 처음 보는게 아니라서 그럴 것이다. 첫 장에서 이미 독자는 상자에 담긴 물건을 꺼내어 본 것처럼 대략적인 사건의 윤곽은 알게된다. 그 다음 장부터는 꺼내어 놓은 물건을 이쪽에서 보고 저쪽으로 돌려보고 바닥을 뒤집어 보고 하는 식으로 사건을 더 자세히 살..
스틸 라이프 (Still Life), 루이즈 페니, 2014년 우리말 번역본 개정판 (초판 2011) 다른 긴 책을 읽는 중에 쉴 겸 해서 신간쪽을 서성이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딱히 좋은 이유가 있어서 뽑아 든 것은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와 똑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던 것 때문에 뽑았다. 표지를 슬쩍 뒤집어 보니 추리소설이라고 소개겸 광고가 되어 있네. 그래, 오랜만에 추리소설 하나 읽어보자. 소개겸 광고에 계속 소환되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름의 권위는 새로운 시도를 정당화 했다. 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것 같다. 내가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군데 아귀가 안맞는게 보인다. 개정판까지 나온 번역이니까 오역으로 인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 구멍은 오래전에 해리 포터 3권을..
소문의 여자 (噂の女), 오쿠다 히데오, 2013년 우리말 번역본 책 맨 앞에 있는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저자의 말부터 무심결에 읽기 시작하다가 “악녀”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책장을 확 넘겼다. 저자가 스스로 스포일러를 뿌리다니!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재활용되는 구성에 식상하다는 한마디를 혼자 중얼거렸다. 어쩌면 오쿠다 히데오는 중단편에 능한 사람인데 뭔지 모를 이유로 자꾸 장편급의 길이로 써내야만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라라피포” 읽을 때에 받았던 신선한 느낌에 비하면, 이제는 짜증까지 올라오려고 한다. 하루 세끼를 케익으로 먹지 않고 밥으로 먹는게 다 이유가 있듯이 하지만, 그 비슷한 구성이라도, 제목에 나오는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