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右腦

한밤중에 행진

nikolai 2013. 8. 2. 10:00

오쿠다 히데오, 한밤중에 행진(眞夜中のマ-チ), 2007년 우리말 번역본

오쿠다 히데오를 소개받은 것은 2008년 "남쪽으로 튀어"(サウス·バウンド)를 통해서였다. 일본 작가는 하루키 이외에는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상당히 재미있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그 이후로 이라부 단편 연작 시리즈를 세 권 정도 읽어보고, 다른 중장편 몇 권을 읽어보았다. 번역자들은 달랐지만 번역이 원문을 제대로 살렸다는 전제하에 (엄청나게 강한 가정!) 말하자면, 그의 글은 가볍게 통통 튀는 경쾌한 느낌이다. 글을 읽다보면 눈 앞에서 5살쯤 되는 아이가 해맑게 웃으면서 탱탱볼을 튀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나치게 웃기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쓸데없이 무게잡는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중간의 위치에서 읽는 사람이 편안하면서도 종종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런 스타일은 "최악"(最惡)에서 사뭇 무겁고 어두워 질 수도 있었던 소재를 가볍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아니, 그런 무거운 소재를 경쾌한 스타일로 다루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점이 놀라왔다.

이번 주에 읽은 "한밤중에 행진"은 그런 느낌이 별로 안든다. 왠지 모를 설익은 느낌이다. 줄거리의 진행이 어째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도 들고, 작가가 본 영화들 중에서 좀 심하게 복사해오지 않았나 싶다. 대놓고 펄프 픽션을 복사한 장면은 약간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주요 인물 그룹의 한 명은 레인 맨을 많이 참조했다는 느낌이 들지만 레인 맨의 주인공과는 조금 다른 생을 이끌고 있으니 살짝 눈 감아 주자. 東京物語에서 과시했던 영-미 대중음악 지식이 여기도 슬쩍 나오기는 하는데, 어째 인물성격과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억지로 대조를 시키려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그냥 읽기만 한다면 재미는 있다. 큼직한 글씨와 작은 판형, 그리고 널찍한 자간과 줄간은 340 페이지 정도를 읽는데 한나절만 투자하면 충분하게 도와준다. 대충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 보는 느낌으로 보면 되겠다. 이라부 시리즈나 다른 단편들을 관통하는 특징인 유머 사이에 숨어있는 인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기대하면 크게 실망한다.

한 줄로 줄이면, "한밤중에 행진"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고 읽어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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