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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메레르 1–7, 나오미 노빅, 2007–2013 우리말 번역본
이 시리즈를 집어든 것은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시리즈 마지막 권(제9권)이 이번 달에 나오는데 아직도 8권이 번역이 안되었네 하는 소리를 하길래 생긴 막연한 흥미 때문이었다. 막연한 흥미였으니까 사지는 않고 빌려 보았다. 지금와서 하는 말이지만 빌려서 읽기만 하고 사지는 않기로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용을 공군용 기체 겸 전투병으로 등장시킨다는 아이디어는 신선했다. 그것에 끌려서 1권을 읽어나가는데, 시리즈 내내 산재한 하이틴 로맨스 급의 용과 인간의 교감에 대한 묘사와 대화가 흥미를 뚝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그 뒤에도 용에게 너무나 많은 성격을 부여한다. 기본적으로 전투기 겸 전투병이라는 설정 외에, 비행사의 “연인”, 보호자, 애완동물, 전장참모, 사상가, ... 그 외의 인물 설정에는 RPG같은 요소가 아주 많다. 특히 3권에 등장하는 타르케는 RPG의 캐릭터 성격 선택창을 떠올리게 한다. 인물 외에도 전체적으로 “탐험”하느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스토리라인도 전형적인 RPG라 흠... 신기하네 하면서 읽었다. 이 모든게 뒤늦게 표지 날개에서 작가가 NWN개발에 참여했었다는 소개를 읽고는 갑자기 이해가 되긴 했다.
글 자체는 읽기 쉬운 문장이라 빠르게 읽을 수 있다. 번역도 음차가 이상하다거나 불필요한 단위변환이 좀 걸리적거리고 stone이라는 단위를 몰라서 직역한게 좀 웃기기는 해도 나쁘지 않다. 지리상으로 말도 안되는 이동경로가 나오는 부분이 종종 있는데 이건 원문의 문제인지 번역의 오류인지는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대체역사물로서의 판타지에 이미 취향을 확립한 사람에게는 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않을 시리즈다. 대신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시간이 잘 간다. 대충 말해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막 다 읽은 중학생이 다음에 무엇을 읽을까 할때 이고깽 양판소라는 잘못된 길로 들지 않게 인도해주는 정도의 위치로 보면 되겠다.
7월 2일 덧붙임: 주말 웹서핑 중 갑자기 생각나서 아직 번역되지 않은 두 권의 줄거리가 대충 어떤지 검색을 해보았다. 위키피디아의 제8권 요약을 두어줄 읽었는데 로렌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단다. 이런 아줌마용 막장 드라마식 설정이라니! 이건 더이상 중학생 수준의 입문용 대체역사 판타지라고 불러줄 수도 없는 수준이다. 어흑. 내가 이런걸 읽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