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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腦

24bit 192KHz 음원과 재생기기

nikolai 2012. 10. 13. 01:00

80년대 코미디 영화 중에 이런 장면이 있다. 한 다큐멘타리 작가가 하드 록 기타리스트를 방문해서 인터뷰하는데, 기타리스트가 자기 앰프를 자랑한다.

"이 앰프는 아주 특별해요. 왜냐하면 이건 볼륨이 11까지 있거든."
"보통 10까지 있는데 이건 11까지 있네요."
"그렇죠? 다른 앰프는 볼륨 아무리 올려도 10까지 밖에 안가는데, 내거는 11까지 가니까 엄청나게 좋은 앰프라구요."
"다른 앰프도 볼륨 눈금을 1부터 10까지 붙인거 떼내고 거기도 1부터 11까지 눈금 그리면 되잖아요? 그럼 그것도 11까지 가는데요?"
"아니, 내거는 11까지 가는거고 다른건 10까지 밖에 안간다니깐 지금 무슨 소리?"
"그럼, 이 앰프에 붙어있는 11까지 그린 눈금 떼고 1부터 10까지 눈금 새로 그리면 아무리 돌려도 10에서 끝나고 11까지 못 가잖아요?"

기타리스트는 대답을 못하고 가만히 서 있다가 한참만에 말을 잇는다.

"아, 이 얘기 했나, 이 앰프가 아주 죽이는 앰프인데, 이거 볼륨이 11까지 올라가요. 이런거 본 적 있나요?"

숫자가 들어가면 뭐든지 숫자 큰게 좋다는 미신이 있다. 엊그제 웹서핑중에 본 어떤 회사 신제품 광고성 기사에 "24bit, 192KHz급의 초고해상도 음원"을 재생하는 휴대용 기기를 발매한다는 말이 나왔다. "CD에 비해 음질이 500~1000배 우수하며 수백만원대 초고가 오디오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선전도 빠뜨리지 않는 그런 광고기사다. 그런 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인 사이트를 가보니 역시나 찬양일색이다.

24bit, 192KHz 음원이 초고해상도의 음원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의 귀는 그런 고해상도 자료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다. 비슷한 인간 감각 기관의 한계의 예를 들자면, 적외선을 쓰는 리모콘을 사용해서 TV채널을 돌릴때 리모콘에서 적외선 나가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마약 먹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게 보이면 적외선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24bit라는건 다이나믹레인지와 관련된 숫자다. 일단, 인간 귀가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최소값은 0dB로 기준을 잡고, 잠깐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는 140dB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 보통은 최대치까지 가지도 않고 130dB이상이면 몇분 안에 청력에 영구적으로 심한 손상이 생긴다고 한다. 공사장 착암기의 바로 옆에서 그 소음을 들을때 시끄러운 정도를 넘어 귀가 아픈 소리가 100dB에서 110dB사이라니까 그 숫자와 시끄러운 정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24bit로 음압을 기록하면 144dB까지 기록할 수 있으니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완벽하게 다 기록할 수 있어서 이론적인 다이나믹레인지도 144dB에 이른다. 문제는, 그게 음악에 쓸데없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이다. 영구적인 청력상실을 유발하는 음압수준을 음악이라고 들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몇초 "음악" 듣고 청력을 완전 상실해서 남은 인생을 귀머거리로 살기 위해 비싼 음원과 기기를 산다는게 말이 안되니까.

CD는 음압을 16bit로 기록한다. 이것은 대충 계산하면 96dB정도 다이나믹레인지에 해당하지만, 실제로 해보면 100dB이 조금 넘게도 가능하다. 그 구체적인 기술적 편법이 어떻게 구현되는지 모르더라도, 24bit음원보다 "500~1000배" 후진 16bit만 써서 기록한 CD를 가지고도 듣고 나면 며칠동안 귀에서 윙윙 소리나게 손상을 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 많을 것이다.

그러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왜 스튜디오에서 24bit를 사용하는가 하는 질문이 당연히 따라 나온다. 이것은 잡음제거 기술과 관련이 있다. 30년전의 연구에 의하면 잡음을 완전히 제거하는데 필요한 다이나믹레인지가 118dB이라고 한다. 한편, 모든 기기가 다 그렇지만, 녹음기기도 다룰 수 있는 한계까지 올라가면 왜곡이 발생한다. 의도적으로 왜곡에 의한 음악적 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있지만, 정상적인 경우에는 왜곡을 방지하기 위해 여유분을 두는 것이 장비를 만드는 모든 공돌이들의 기본 자세! 이런 여유까지 감안하면 녹음장비는 대충 125dB정도의 다이나믹레인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 모든 얘기는 제작상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것과 관련된 것이다. 제작 음질이 인간 한계를 넘어 좋아진다고 해서 음악 청취자의 귀가 수퍼맨 귀로 변하는게 아니다. (적외선으로 리모콘 만든다고 인간 눈에 적외선이 보이는게 아니다.)

결정적으로, 비트수를 늘려 고통스럽고 장애를 유발할 정도로 높은 음압까지 기록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이유는, 음원에서 음압이 높지 않더라도 재생기기에서 볼륨을 조절함으로써 청취자에게 전달되는 음압을 얼마든지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옛날 CD는 조용조용하게 녹음되어 있지만, 볼륨을 한껏 올리면 요즘 나오는 CD만큼 시끄럽게 들을 수 있다.

그래서, 24bit 음원은 공간만 50% 더 많이 차지하고 인간에게 "500~1000배 우수한 음질"로 "감동"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녹음한 음원으로 듣는다고 귀가 아픈만큼 감동이 커진다는게 말이 될 수가 없으니까. 24bit 음원에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은 음악을 들어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마도 음악을 저장할 공간이 50%이상 더 필요해서 저장장치를 더 많이 팔게된 사람들이 아닐까?

쓰다보니 자꾸 길어져서 192KHz에 관한 얘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10/13 덧붙임:
192KHz가 왜 소용없는지 반 정도 쓰다가 들어왔더니 24bit 음원으로 검색하여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유입경로를 따라가서 검색엔진에 나온 것들을 하나씩 보는데, 어떤건 그냥 장삿속 허풍이고, 어떤건 반만 맞는 얘기이고, 그런 식이다.

그런데, 그 중에 이미 지난 4월에 내가 하는 것과 거의 같은 얘기를 했던 글이 있다. 내가 하려는 얘기와 비슷하지만 짧길래 그냥 계속 쓰려고 하던 차에, 그 글의 맨 밑에 걸린 링크 24/192 Music Downloads ... and why they make no sense를 따라가서 읽고는 더 쓰기를 포기했다. 우리말은 아니지만 그림까지 곁들여 설명하는 것보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다음 포스팅을 예고했던 줄은 취소선을 긋고, 이 문단의 두 링크로 대신한다.

그동안 쓴게 아까와서 한 문장만 덧붙이면, 개나 고양이가 듣는 높은 주파수의 소리를 엄청난 음압으로 내는 악기로 만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돌연변이 X-men은 24bit, 192KHz음원과 이를 충실히 재생하는 기기를 사용해서 감동을 느낄 수 있겠지만, 나같은 보통 사람은 적외선 리모콘에서 적외선이 나가는거 보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런 음원과 재생기기를 사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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