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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2014년 우리말 번역본
수족관의 살인, 아오사키 유고, 2015년 우리말 번역본

표지부터 범상치 않다. 오타쿠가 아니면 손대지 말라고 겁을 주는 느낌이다. 다행히도 구입을 한 책들이 아니라 빌려 읽은 책들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다.

표지가 주는 오타쿠 지향성도 별로지만, 내용 진행도 오타쿠만 읽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듯하다. 역자의 소개에 따르면 저자가 원래 오타쿠용 소설로 작가생활을 시작하려고 시도했었다니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겠지. 오타쿠나 알아들을만한 참조들은 둘째치고라도, 만화에서나 통할 심하게 비현실적인 인물설정부터 걸리적 거린다.

“헤이세이 엘러리 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는 역자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일본 문학평론계와 나는 매우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보기에는, 독자가 같이 추리할 여지를 주지 않고 혼자서 꽁꽁 감추어 놓고서는 만화같은 이야기나 한참 풀다가 끝에가서 한꺼번에 우르르 해결하는건 아무리 좋게 봐줘도 애들 보라고 만든 만화다. 흔히 “이고깽”이라고 부르는 것의 추리소설 버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탐정”에 해당하는 인물은 처음부터 완전히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오면서 독자에게는 힌트 하나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작가의 분신으로서 “나는 이걸 다 알고 있지만 너희들은 끝까지 읽어야만 가르쳐 줄거다”라고 하는 것 같다. 클릭당 돈을 받는 장사꾼이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러 숨기는 듯하여,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추리소설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파괴한다.

대신 아동 만화처럼 비현실적이라서 별로 고민할 필요없이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차피 추리할 여지를 주지 않으니까, TV만화 보듯이 그냥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면 된다. 어쩌다 생긴 반나절 정도 비는 시간을 때우기가 애매하다면, 그 공백을 메워줄 재료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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