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右腦

소문의 여자

nikolai 2014. 1. 28. 00:00
소문의 여자 (噂の女), 오쿠다 히데오, 2013년 우리말 번역본

책 맨 앞에 있는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저자의 말부터 무심결에 읽기 시작하다가 “악녀”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책장을 확 넘겼다. 저자가 스스로 스포일러를 뿌리다니!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재활용되는 구성에 식상하다는 한마디를 혼자 중얼거렸다. 어쩌면 오쿠다 히데오는 중단편에 능한 사람인데 뭔지 모를 이유로 자꾸 장편급의 길이로 써내야만 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라라피포” 읽을 때에 받았던 신선한 느낌에 비하면, 이제는 짜증까지 올라오려고 한다. 하루 세끼를 케익으로 먹지 않고 밥으로 먹는게 다 이유가 있듯이

하지만, 그 비슷한 구성이라도, 제목에 나오는 인물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중심인물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그 인물을 엿본다는 것은 새로운 요소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제목에 소개된 인물의 행적이 어떠했을 것이라고 독자도 추측할 수는 있다. 하지만 확정적인 말은 나오지 않는다. 마치 독자가 배경이 되는 시골도시에 살면서 (오락처럼 자행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을 통해 알게 된 듯한 느낌을 준다.

끝까지 읽어내리고 나서 이러한 시점과 구성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너무 큰 사물의 바로 앞에 서있으면 한 눈에 그것을 다 볼 수 없는 것 처럼, 시골도시에서 보기 힘든 그 “거대한” 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구성을 잡고 시점을 제공해서 독자를 배경으로 끌어들인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스포일러때문에 덮어버리고 맨 나중에 읽은 저자의 말에 비추어보니, 그런 해석은 나의 팬 충성도가 지나쳐서 과잉미화한 것으로 판명났다.

그동안 번역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은 거의 다 읽었지만, 이번 것 만큼 번역자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번역은 처음이다. 마작이나 일본 불교의 관례에 대한 주석이야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펑퍼짐한”이라는 단어를 “육감적인”이라는 말과 함께 동일한 신체부위를 묘사하는 구절에 집어넣은 번역은 자꾸 번역자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불행하게도 이런 묘사가 꽤 여러번 나온다. “펑퍼짐한”이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썼을때에는 모양이 볼품 없다는 부정적인 함의를 가지는게 내가 살아온 지역과 시대만의 잘못된 용법이었는지 사전까지 찾아보았다. 어쩌면 번역자가 살던 시대와 그녀의 또래그룹에서는 긍정적인 의미였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라부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통찰은 매우 신선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통찰이 이후에 새로운 글이 번역되어 나올때마다 부정적인 인간 심성의 부각으로 흘러가는 것은 일본의 상황 때문인지 작가의 삶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경쾌한 문체로 읽을 때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던 오쿠다 히데오는 “소문의 여자”에서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이 사람도 이름만 보면 일단 구입하고 보는 작가목록에서 내려야 할 때가 되었나보다.

댓글
공지사항